아르바이트 중입니다.
병원에서 방사선과 야간 보조로 일하고 있습니다.
비록 주어지는 보수는 얼마 되지 않지만 학생의 입장이고 하니까... 공부에 도움이 될까 하고 다니는 겁니다.
어제 인상 깊었던 환자가 두 명있었습니다.
같은 59세. 같은 남자.
한 분은 말랐지만 다른 한 분은 몸이 제법 좋으셨죠.
저녁 8시가 조금 넘었을까....
몸이 좋으신 환자 분이 119에 실려왔습니다. 의식은 없는 듯했고 숨도 거의 쉬지 않는 상태였습니다.
응급실에서 도착 즉시 심폐소생술을 실시했습니다.
그 분의 가족들은 초조하게 밖에서 기다리시더군요.
심폐소생술을 받는 분의 아들로 보이는 남자 분이 둘, 그 중 한 명의 부인으로 보이는 분이 한 명, 그리고 그 여자 분의 손을 잡고 있던 5~6 살 되어보이는 꼬마아이.
다른 환자가 왔기 때문에 계속 보고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사실, 환자가 안오더라도 계속 보고있을 수는 없었겠지요. 방사선사는 심폐소생술에 별로 도움이 안되니까요.
있어봤자 거치적 거리기만 할 겁니다.
환자의 촬영이 끝나고 필름을 응급실로 가져다 줄 때, 아직까지도 응급실 한쪽 가려진 커튼 뒤에서는 심폐소생술을 계속 하고 있었습니다.
시간 상으로는 10분이 훨씬 넘었을 겁니다.
군대에 있었을 때, CPR(심폐소생술) 훈련을 받은 기억으로는 "살아날 때까지 계속 한다."라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말을 웃음으로 흘리며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할 수 없잖아. 우리가 환자와 1대 1비율로 수가 많은 것도 아닌데." 라고 무시했었죠.
하지만 그 후로 30분이 지나도록 응급실의 심폐소생술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이미 늦었다고 생각될 정도였습니다. 사람은 심장이 멈추고 10분도 안되서 죽습니다.
한 시간 가까이 됬을까.... 응급실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포터블 체스트 좀 찍어주세요."
이동식 엑스레이 기기로 흉부 사진을 찍어달라는 말이었습니다.
살아난 것 같은데... 라는 느긋한 생각으로 기기를 끌고갔지만 아직도 계속 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무거운 심정으로 엑스레이를 찍고 필름을 현상하고...
필름을 가져다주자 담당 의사선생님이 가족들에게 말했습니다.
"돌아가셨습니다."
순간, 응급실은 울음바다가 됐죠. 아직까지 이해를 못한 아이들은 우는 엄마의 손을 잡고 왜 우느냐고 물어보고, 아빠의 다리에 매달려 할아버지는 어떻게 됬냐고 묻고...
기기를 서둘러 빼내고 묵묵히 유족들의 옆을 지나 과로 돌아왔습니다.
남의 일이지만 좋은 기분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1시간 뒤에 마른 체격의 할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들어오셨습니다.
척 봐도 별로 심각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촬영 시간 내내 아프다고 궁시렁대며 불평, 불만을 쏟아내다가 이런 말을 하시더군요.
"오늘 나 죽을 뻔 했다"고....
그 때 뭐라고 하려던 말이 가슴에서 탁 막혔습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피 나고 조금 찢어져서 오셔도 살아있지만, 한 시간 전에 오셨던 할아버지와 동년배의 한 분은 몸에 아무런 상처도 없고 부러진데도 없었지만 한 시간이나 가까이 몸을 응급실 침대에 눕힌 채 아무런 의미없는 치료를 받다가 돌아가셨소. 그런 소릴랑 하지 마세요."
산 자는 불평이라도 할 수 있지만 죽은 사람은 아무것도 못하죠. 불평이 살아있는 사람의 특권이라고 말한다면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만, 그래도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조금이나마 불평 불만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그렇게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by 프리 | 2006/08/16 07: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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